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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고분군 6차발굴 가야사 다시 써야
  • 울산 뉴스투데이 기자
  • 등록 2011-09-26 2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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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관가야 묘역 정벌된 후에도 축소되지 않았다
▲     73호 전경

가야의 왕(급)무덤들인 대성동1·2·3호분의 남쪽 아래사면에서 대성동1호분보다 약 30년 늦은 시기인 5세기후기에 해당하는 대형수혈식석곽묘(73호분)와 무문토기시대 개석목관묘(84호)가 대성동고분군에서 처음으로 조사됐다.
 
수혈식석곽묘인 73호분은 비록 부곽이 딸리지 않지만, 무덤의 크기와 금동관으로 보아 금관가야의 수장묘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73호분에서 출토된 토기는 이단교호투창고배 등 신라식토기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가야적인 문양시문 방법과 소가야식토기가 부장되는 등 가야토기의 요소 역시 많이 포함됐다. 이 토기들의 시기는 복천동 53호와 마산 현동 64호와 같은 단계로 5세기 3/4분기로 설정된다.
 
84호 석개목관묘는 청동기시대 후기 전반의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데, 삼한시대 목관묘에 주로 부장되는 유리제소형환옥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이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유리제소형환옥 중 가장 빠른 시기의 사례로 이 환옥의 계통과 제작시점에 대해 많은 논쟁이 예상된다. 또 석개목관묘의 하한시점과 삼한시대 목관묘와의 관련성 여부 역시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게 됐다.
 
이밖에도 4세기1/4분기의 대형목곽묘가 대성동고분군에서는 확인되지 않다가 이번에 조사되는 등 금관가야 고분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들이 다수 확보됐다.
 
김해시는 “향후 대성동 1호분과 73호분 사이에 대성동 1호분 다음 단계의 수장묘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확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73호분 발굴의 의미는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금관가야 정벌로 인해 금관가야 수장층 묘역인 대성동고분군이 축조 중단되고 중심세력이 없어졌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단서가 확보 된 것으로 향후 역사교과서에 실린 가야사가 바꿀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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