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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노인이 창문을 넘어 도망친 이유?
  • 서보현 기자
  • 등록 2013-08-17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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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기의 시선 피해 자기 삶 찾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
[울산뉴스투데이 = 서보현 기자] "힘들지 않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됐어, 됐어. 들어준다니. 노인네 취급하는 거야, 지금?"
 
'할머니가 저보다 힘이 세신 건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덧붙이려다 한 방 먹었다. 정신이 확 들었다. 주말을 맞아 우리 집에 들른 외할머니와 마트에 갔다가 생긴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할머니는 언제나 그랬다. 당신이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었음을 쉽게 수긍하지 않으셨다. 의식적으로 딸과 아들의 취향을 좇았고, 지금은 손자‧손녀의 노트북을 수시로 들여다보신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할머니는 요즘 또래 분들보다 조금 더 활력 있게 삶을 즐기신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는 관대하지 않은 것 같다. 버스 안에서 할머니가 서 계신 광경을 본다면 괜히 민망해진다. 대학생이 트로트 가요를 즐기는 건 개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할아버지가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면 이유 불문하고 눈살을 찌푸린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요구되는 덕목들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늘어만 간다. 나이가 들수록 차분해야 하고, 근엄해야 할 것만 같다.  

요컨대 사회는 '나이가 든' 사람을 일종의 '약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근력의 퇴행이 내면의 퇴행을 가리키는 건 아님에도 말이다. 언제나 보살펴야 하는 대상. 그것이 우리가 노년층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인식이란 사실은 부정하긴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최근 문화계에는 이런 인식을 깨부수는 콘텐츠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노인=주체적이지 못하고 언제나 사람들의 손길을 필요로 함'이라는 등식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스웨덴에서 먼저 출간되어 100만 부, 전 세계적으로 500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말 그대로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알란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

알란은 스웨덴의 한 양로원에서 살고 있었다. 100세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는 갑자기 화단의 창문을 통해 양로원을 탈출한다. 알란이 처음 도착한 곳은 버스터미널.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버스터미널은 알란에게 알 수 없는 용기를 북돋워주고, 사기충천한 알란은 한 젊은이의 트렁크를 훔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는 알란이 살아온 100년 가까운 인생과, 또 알란의 도피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모험을 나란히 전달한다. 이제껏 지나온 삶과, 그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 이 순진한 노인이 겪는 계속되는 우연에 실소를 터뜨리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알란의 인생은 무엇인가? 또 나의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   '노인'을 키워드로 한 다양한 작품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영화 <버킷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tvN <꽃보다 할배>   ⓒ울산 뉴스투데이


'스웨덴 할배' 알란이 겪는 종이 속 모험이 비현실적으로 들린다면, 진짜 모험을 자처한 4명의 현실 속 '할배'들은 어떤가. TvN <꽃보다 할배>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4명의 원로연예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사실 지상파에도, 케이블에도 연예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은 많이 있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에는 기존의 이목구비가 아름다운, 혹은 불룩한 근육을 자랑하는 '젊은' 연예인은 없다. 대신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소주와 장조림을 짐으로 챙기는, 연예인 경력이 다들 30년은 훌쩍 넘는 '나이 든' 연예인과 함께했다. 그리고 결과는?

사람들은 이 할아버지들의 좌충우돌 여행기에 환호했다. 젊은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없는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할아버지들의 어록도 탄생했다. 할아버지들이 노트르담 대성당을 돌아보며 카메라에 대고 속삭이는 많은 얘기들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어땠는지, 이제는 어때야 하는지 이 프로그램은 조용히 묻는다.

<꽃보다 할배>는 영화 <버킷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하 <버킷리스트>)과 닮아 있다. <버킷리스트>는 죽음을 목전에 둔 두 노인이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하나하나 실행해본다는 내용의 영화다. 문신하기, 스카이 다이빙,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꽃보다 할배>에서는 그 버킷리스트가 '여행하기'로 나타나 있다. 세부적인 내용이야 어떻든, 할배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나, 이렇게 많은 활동들을 할 수 있을 만큼 아직 팔팔하다!


그리고 또 하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속 알란이 탈출을 감행하는 비상구가 문이 아닌 '창문'인 것이 흥미롭다. 창문에서 뛰어내리면 다리가 다칠 수도 있는데.

어쩌면 알란도, 창문으로 탈출함으로써 자신이 아직 인생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나이, 그렇게 '늙지 않은' 나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커다란 문으로만 자신을 모시는 요양원 직원들을 향한 소심한 복수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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