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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대산 자락, 남화동을 아십니까?
  • 김영호 기자 기자
  • 등록 2011-11-14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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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 가치 충분한 마을 관리 미비...대책마련 시급



 

공장으로 가득한 울산 남구 용잠로 일대에 허름한 안내문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남화동 옛터.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름이 약 8m의 토벽(土壁)으로 된 둥근 모양의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었던 곳이다. 그 유적 한가운데 지름 약 2m, 높이 약 2m의 둥근 기둥 모양의 흙으로 된 구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가리봉수대로 고려시대 때 처음으로 축조해 서쪽으로 하산(下山)봉수대에, 동쪽으로 천내(川內)봉수대에, 북쪽으로 경주부 대점(大岾)봉수대에 응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등 옛 문헌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유적의 터는 훼손이 심각했다.

 

비록 이 유적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산자락을 지나는 도로에 작은 표지판을 세워 그 존재라도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작은 동산에 ‘남화동 옛터비’가 남아 있고 이 마을에 대한 설명을 해 놓은 ‘내고향 심포리’란 지도가 그려진 판이 세워져 있었다. 맞은편은 빛바랜 이곳의 1977년 정경이 남아 있지만 흐릿한 상태다.

 

이곳 출신 황홍석 선생이 쓴 ‘내고향 삼포리’의 글은 벗겨지고 헤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이 일대 산쪽으로 용연공단의 대기 오염 때문인지, 나무들이 말라죽어 황량한 모습을 보였다. 군부대가 주둔하다가 버려둔 막사와 참호가 원래의 정상에는 육안으로 보아 봉수대의 흔적은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동남쪽에 가리(加里)봉수대를 보호했던 석축이 일부 남아 있다.

 

1894년(고종31년)심포동과 심해동으로 갈라져 있던 것을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남화동이 되었고 1997년 울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남화동이 됐다. 행정상 선암동이며 남쪽의 곶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남구 해안주민의 이주로 기억되는 이곳은 옛터비가 마을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봉화의 사명을 띤 역사적 가치나 남구지역의 바닷가 주민들의 애환과 삶을 기록하기란 턱없이 모자란 공간이지만 이마저도 관리가 되질 않아 황폐해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남화옛터동산은 옛터비를 중턱에 조성한 관계로 우천시 토사가 많이 흘러내리고 있다.

 

주변 울타리 조성 목적으로 심어진 나무들이 일관성 없이 심어져 외관상 보기에 깔끔한 맛이 없다. 또 심어진 나무들이 몇 그루가 고사된 채 방치되어 있다.

 

가가호호 세대주 이름을 명기한 마을 전경은 그 의미는 좋으나 현재 낡아서 페인트칠이 일어나고 있어서 코팅작업이나 보완작업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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